여행기 27

완주 송광사 여행기 - 2 - : 대웅전과 불화 감상기

2023.11.26 - [여행기] - 완주 송광사 여행기 - 1 : 일주문에서 천왕문 까지 완주 송광사 여행기 - 1 : 일주문에서 천왕문 까지 요사이 완주는 이런저런 작고 핫한 스팟들이 생겨나면서 사람들이 여행지로 많이 선택하고 있다. ​선비들이 풍류를 즐길 만큼 풍경이 아름다운 비비정부터, BTS도 다녀갔다는 힐링 성지인 오성 journeywithdad.tistory.com 1편에 이은 2편으로 가보자. 글이 길어져서 2편으로 나누기로 했다. 절이 그리 크진 않지만 쓰다 보니 내용이 너무 길어졌다. 아버지처럼 쓰기엔 아직 내공이 부족한가 싶다. 일단 나는 아버지처럼 문과도 아니고 사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기에 글에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거나 부족한 부분이 많겠지만, 내가 논문이나 기사를 쓰는 것도 아니고..

여행기 2023.11.26

완주 송광사 여행기 - 1 : 일주문에서 천왕문 까지

요사이 완주는 이런저런 작고 핫한 스팟들이 생겨나면서 사람들이 여행지로 많이 선택하고 있다. ​선비들이 풍류를 즐길 만큼 풍경이 아름다운 비비정부터, BTS도 다녀갔다는 힐링 성지인 오성 한옥마을의 아원 고택, 즐거운 체험이 가득한 삼례문화예술촌과 복합문화공간 산속등대, 대한민국 술 테마 박물관까지~ 여러가지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더라 이번여행 한번으로 다 못가보았으니 다음에 한번더 방문해보기로 했다. 문화유산 답사를 해봐야겠다는 강박으로 찾아보니 송광사가 있다. 전남 순천의 송광사를 아버지가 다녀오신 여행기를 이 곳에 올린적이 있었는데, 완주의 송광사를 내가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이번에는 완주의 송광사 답사기를 써본다. 2023.07.29 - [여행기] - 순천 조계산 송광사(松廣寺) 벽화로 본..

여행기 2023.11.26

창덕궁 방문기 (1) - 돈화문을 지나서 인정문까지

창덕궁의 북쪽, 창경궁과의 경계에서 위로 더 올라가면, 면적 10만 3000여 평의1963년 사적으로 지정된 창덕궁안에 있는 조선시대 정원인 후원이 나온다. 흔히 비원(祕苑)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곳은 조선왕궁의 놀이와 잔치 장소로 활용된 대표적인 유적이다. 1997년 창덕궁과 이 후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쉽게 말해 왕실의 사적인 공간이라는 뜻인데, 조선시대에는 왕은 거의 국가이고, 왕의 모든 행위와 일상은 전혀 사적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이 곳에도 정치와 관련된 시설들이 위치해있다. 후원은 특별관람을 회차별로 예약을 해서 들어갈 수 있다. https://ticket.uforus.co.kr/web/main?shopEncode=&productGroupCode=02000005&lang..

여행기 2023.09.09

창의문(彰義門) 지네와 닭

창의문(彰義門)은 한양 도성(都城) 4소문 중 하나인 서북문으로 백악(=북악)과 인왕산이 만나는 잿마루에 있다. 문을 내려가 홍제원(지금 홍제동) 쪽으로 가면 옛 의주대로와 통한다. 의주대로는 옛 6대로 또는 8대로 중 중국에 이르는 길이라 가장 중요했다. 의주대로로 갈 때 공식 행차야 서대문으로 나가겠지만, 민초(民草)들은 창의문이 지름길이었다. 지금도 홍제동 쪽에서 도심으로 올 때 이쪽이 빠르고 덜 복잡하다. 창의문을 자하문(紫霞門) 이라고도 불러 언뜻 불교를 떠올릴 지 모르나 그건 아닐 것 같다. 고어(古語)에 성(城)을 ‘잣’이라 했으니 창의문 아랫동네 사람들은 성문을 ‘잣문’이라 불렀을 텐데 이 ‘잣문’을 아화(雅化)하여 자하문 (紫霞門)으로 적었을 것이다. ‘자문’이라고도 하니 ‘잣문’ 설을 ..

여행기 2023.09.02

화성행차를 따라서 (4) 남대문

지금은 고층건물에 에워 싸여 위엄을 찾기 어렵지만 백년 전만해도 주위에 나직나직한 집들 밖에 없었으니 엄청 크게 느꼈던 모양으로 남대문이 돈짝 만하게 보인다는 말이 다 생길 정도였다. 남대문은 도성(都城)의 상징이요 옛길 중 영남대로와 삼남대로의 시발점이다. 현판에는 숭례문(崇禮門)이;라 쓰여 있으니 3편 글에서 이야기 한대로 오상(五常) 중 남방(南方)에 해당하는 예(禮)를 넣어 지었으니, 옛날 사람들은 이름만 듣고도 남쪽에 있는 문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현판글씨는 설이 구구하나 양녕대군이 썼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있다. 글씨를 세로로 쓴 것은 숭례(崇禮) 두 글자가 위 아래로 있으면 불꽃을 뜻하기 때문에 관악산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해서 라고 한다. 글자를 그렇게 세로로 쓰면 왜 불꽃이 되는 지는..

여행기 2023.08.28

화성행차를 따라서 (3) 종루와 광통교

일요일 아침 10시 10분 이문설농탕을 나왔다. 종루(鐘樓) (종각(鐘閣) 또는 보신각(普信閣) 지금은 광화문 네거리가 서울의 중심, 도로원표가 있으니 대한민국의 기준점이지만, 조선시대 도성의 중심은 종루 였다. 세종실록 지리지 : 鐘樓 在都城中央 종루는 도성 중앙에 있다. 構爲二層 이층으로 되어 있고, 樓上懸鐘 누위에 종을 달아서 以警晨昏 새벽과 저녁을 깨우쳐 준다. 태평로-세종로 길은 대한제국-19세기 말부터 생겼고 조선 왕조 때는 남대문에서 신세계 앞, 명동, 광교를 거쳐 종루로 들어 왔다. 오늘 날 도시계획은 길을 퀭하게 뚫어 이리 저리 사통팔달 연결하는 것이나 옛날에는 그렇게 하면 기(氣)가 흐트러지고, 적이 침입 할 때도 불리하다고 생각했다. 위 세종실록지리지 인용대로 조선 초기에는 2층이었으..

여행기 2023.08.24

화성행차를 따라서 (2) 돈화로

211년 전 윤(潤) 2월 9일 정조대왕은 창덕궁에 사셨으니 6시 45분 이른 새벽에 길 떠났지만, 필자(筆者)야 집에서 오는 시간이 있어 돈화문 앞에 가니 일요일 오전 9시로 날씨는 매우 차나 사진 찍기 딱 좋게 맑게 개었다. 돈화문 (敦化門) 광화문 복원 글에도 월대(越臺) 이야기를 잠깐 했지만 돈화문 앞에도 월대가 있었으니 다음은 동궐도(東闕圖) 중 돈화문(敦化門) 부분이다. 동궐도(東闕圖) 란? 국보제249호, 견본채색, 16폭 병풍, 각 폭 36.0x275.0cm 조선시대(朝鮮時代) 동쪽에 있는 창덕궁(昌德宮)과 창경궁(昌慶宮)을 함께 그렸기에 동궐도 (東闕圖)라고 한다. - 일반 적인 풍경화와는 달리 투시도가 아니라 등각 투상도 형식으로 그려졌다.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예술적인 가치보다는 기록으..

여행기 2023.08.23

화성행차를 따라서 (1) 반차도

이 글은 1795년 정조 대왕이 돌아가신 아버지 사도세자 (1735년생)의 주갑(周甲)과, 아버지와 동갑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回甲)을 맞아 아버지 무덤 현륭원과 화성을 찾는 행차를 따라 걷는 기행문이다. 다녀 왔다 하고 네 글자로 끝낼 수도 있겠지만 이것 저것 사설과 사진을 붙일 테니 꽤 여러 편으로 나뉠 것 같다. 임금이 능(陵)에 가는 것을 능행(陵幸)이라 하는 데 이때 사도세자는 아직 장조(莊祖)로 올리기 전이라 그 묘는 능 이 아니고 원(園)이니 (고종 때 추존(追尊)되어 지금은 융릉이라 부름) 이 글의 주제가 되는 행차는 능행이 아니고 원행(園幸)이고, 을묘년이니 을묘원행 이다. 1795년 을묘년 (乙卯)년 윤(潤) 2월 9일 오전 6시 45분 세 번째 북이 울리니 (삼취 (三吹) 임금의 거둥..

여행기 2023.08.21

사자산 법흥사 (獅子山 法興寺)

영월 수주면 사자산(獅子山) 자락 법흥사에는 신자들의 순례가 끊이지 않으니 바로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있음이다. 적멸보궁(寂滅寶宮) 이란 ?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한 대신 불상을 모시지 않는 불전(佛殿). 부처님의 분신과 다름없는 사리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전(殿)이나 각(閣)보다 상위개념 인 궁(宮)이라 하였고, 그도 모자란지 하나 더 올려 보궁(寶宮)이란 이름을 붙였다. 보궁(寶宮)의 기원은 석가모니가 대각(大覺) 후 최초의 적멸도량회를 열었던 마가다국 가야성 남쪽 보리수 아래 금강좌(金剛座)에서 비롯된다. “- 이상 불교용어사전에서. 우리나라에는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 있으니, 영축산 통도사, 오대산 월정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다. 이 정도 사전..

여행기 2023.08.20

선정릉 - 정릉(靖陵) - 중종

삼성동 선정릉(宣靖陵)에는 필자가 먼저 글 ‘선릉’ 에서 소개한 성종(成宗)과 그 계비(繼妃) 정현왕후(貞顯王后)의 능 뿐 아니라, 제 11대 중종(中宗)의 정릉(靖陵)이 또 있다. 사진 : 구글로 본 선정릉. 입구에 성종의 선릉이 있고 그 안쪽에 중종의 정릉(靖陵)이 건좌손향(乾坐巽向)-북서에서 남동을 바라보고 있다. * 중종은 연산군을 쫒아내고 집권한 조선의 11대왕이다. 연산군의 이복형제였으며 초기에는 중종반정의 공신들에게 휘둘렸으며 이들을 견제하고자 그 유명한 "조광조"를 등용하여 왕권을 강화해보려했지만, 그 조광조도 말을 안듣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훈구파와 조광조로 대표되는 사림파를 적당히 균형있게 견제하다가 여러차례 사화를 일으켜 옥사와 피바람을 일으켰다. 집권기 내내 이런저런 잡음이 컸으니..

여행기 2023.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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