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12

임진왜란 1회전 , 탄금대 전투 (1) - 전투 사전 준비

1592년 4월 13일 쓰시마를 출발한 일본군은 부산과 동래를 함락시킨 후 파죽지세로 북상한다. 부산진-동래 전투는 조선의 예상 밖의 대규모 병력을 상륙시킨 일본군에게 지속적으로 격파당하였다. 거침없이 북상하는 일본군은 4월 28일 충주에서 신립의 병력과 조우한다. 임진왜란 초기 최대의 전투이자 조선군에게 막대한 손실을 안긴 것이 바로 탄금대 전투이다.일단 조선군과 조선 조정은 바보는 아니었고, 엄청나게 무능력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임진왜란 초기의 지속적인 패전은 초기 대전략의 거대한 실패에 기인한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제일 큰 원인은 바로 일본군 병력과 일본의 국력 판단에 커다란 오차가 있었던 탓이다.일단 일본의 전체 동원가능한 병력 총 47만으로 추산되는데, 조선은 이 숫자를 알지 못했다. ..

역사이야기 2024.06.23

8-15를 맞아 _ 일본 천황의 종전(終戰)조서

광복절을 지나 생각나는 것이 일본 천황의 이른바 ‘종전조서(終戰詔書)’다. (항복 선언이 아니다). 우리 때 초등학교 교과서에 일본 천황이 떨리는 소리로 방송.. 어쩌고 하는 글이 실려 있기도 하여, 그런 게 있다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으나, 전문(全文)을 읽어 본 것은 최근이다. 원문 텍스트와 번역문은 글 말미에 붙이겠거니와 문장이 상당히 어렵다. 일본어 토씨나 읽는 수준인 나야 말할 것도 없지만, 잘 하는 사람… 아니 일본인들조차도 보통 대중(大衆)은 이해하기 쉽지 않겠다. 말 자체가 어려운 것만 골라 놓은 것이다. ‘유범(遺範)’ 같은 것은 그렇다 치고, ‘너희들 신민’ 하지 않고 ‘爾臣民’ 해 놓으면 보통 사람이 알아먹겠나?‘拳拳措カサル’ 같은 것은 직역에서 권권복응(拳拳服膺)이라고 해 놓은 ..

역사이야기 2023.08.19

호치민 일대기(2)-유신회

유신회 (維新會) 20세기 초 월남에 ‘호이주이떤’ 이란 단체가 결성되었는데 한자로는 유신회(維新會)로 쓴다. 주로 왕족 중심의 독립운동단체로 그 투쟁의 원동력을 월남 내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외국원조에서 구했다. 외국이라고 해도 동남아에 진출한 당시 서구 열강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 정도 인 바 이들은 각자 세력범위에 대한 일종의 담합. 즉 상대방 구역은 건드리지 않기로 합의가 되어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현상을 타파하고 싶은 것은 신흥세력이니, 월남 유신회에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해 주는 나라는 후발제국주의자 일본이었다. 일본은 일찍부터 동아시아의 맹주가 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는 나중에 * 팔굉일우 (대아시아주의)로 수렴된다. 팔굉일우 (八紘一宇) ; 온 천하가 한 집안 이..

역사이야기 2023.08.14

병자호란 날짜별요약

1636(丙子년) 호란 전 청나라가 보낸 국서(國書) 11.25 까지 왕자와 대신을 보내라 ““네 나라히 동지 달 이십 오일 젼으로 대신(大臣) 왕자(王子)를 보내지 아니하면 내 당당이 동으로 크게 나가리라. 나 드르니 네 나라히 산셩(山城)을 만히 ?거니와 당당이 대노(大路)로 조차(=따라) 갈 거시니 산셩으로 날을 막을소냐 네 나라히 강화(江華) 밋거니와 팔도(八道) 즛바랄?(=짓밟을 적) 조고만 셤으로 님군 노릇을 할소냐. 네 나라히 의논 잡으니 다 션비니 가히 붓살 둘너(=붓을 쌓아서) 날을 막을소냐” (산성일기) 12.02 청군 심양을 떠남 청병이 스스로 20만이라 칭하였으나 실은 자기들 군사가 7만이고, 몽고 군사가 3만이며, 공유덕(孔有德)과 경중명(耿仲明)의 군사가 2만이니, 합하여 12만..

역사이야기 2023.08.09

병자호란(丙子胡亂) (3)

강화도(江華島) 함락(陷落) 강화와 육지를 가르는 염하(鹽河)는 넓이가 개울 정도 지만 역사상 외적(外敵)은 여기를 도저히 건널 수 없었다. 유목민이라 수전에 익숙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몽고가 초원을 떠나 중국을 침공하면서 중국인의 기술을 빌어 바다 같이 넓은 황하와 양자강도 건너는 실력을 갖추었는데 이 좁은 해협이 문제가 되었겠는가? 더욱이 청나라의 여진족의 전신으로 여겨지는 말갈족은 바다를 통해 신라, 우산국(울릉도), 규슈등지를 무수히 약탈한 적이 있다. 해전 능력이 없어서 강화도를 침략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는 뜻. 그럼에도 육지에서 바라만 보았던 것은 물살이 세찬데다가 곳곳에 암초가 널려 있어 보기와는 달리 대단히 위험한 물길이기 때문이다. 위 지도에서 남쪽 손돌목과 북쪽 갑곶진 사이 염하(鹽河..

역사이야기 2023.08.06

병자호란 (丙子胡亂) (1) - 쌍령(雙嶺)전투

필자(筆者)의 방계 조상 분 중 한분-정확하게는 12대 조(祖)의 동생 되는 분이 참가한 전투이다. 1636년 병자호란을 당해 남한산성에 포위 된 인조대왕과 조정(朝廷)을 구출하기 위하여 경상도 근왕군이 수행한 작전으로, 때는 병자년 해를 넘긴 1637년 정축(丁丑)년 1월 3일이다. 전개상 병자호란부터 개관(槪觀)해 본다. 1636년 병자(丙子)년 12월 2일 만주, 몽골,한인(漢人)으로 구성된 청(淸)의 10만 군대가 심양을 떠난다. 12월 9일 청군(淸軍) 압록강을 건너다. 음력으로 12월 6일이면 양력으로 정월 중순. 강은 이미 얼어 있어 도하작전이 따로 필요 없었다. 그 해 청(淸)의 침공은 진작부터 예고되었으니 (*) 홍타이지는 11월 25일 까지 인질을 보내지 않으면 쳐들어 올 것 이라고 협..

역사이야기 2023.08.03

병자호란(丙子胡亂) (2)

정축하성(丁丑下城) 병자호란(丙子胡亂)은 물질적 손해는 임진란(壬辰亂)보다 덜 할지 모르나 임금이 삼전도에서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고 절한 사건은 조선 선비들에게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주니 최근 역사학계에서 조선왕조 전기 후기 시대구분을 임진란 대신 병자호란으로 하자는 논의가 있을 정도다. 그 후 병자호란(丙子胡亂)이란 말도 꺼내기를 싫어하여 정축년에 산성을 내려 왔다는 뜻으로 정축하성(丁丑下城) 또는 하성(下城)으로 써 버린다. 먼저 글 ‘쌍령전투’ 와 일부 중복되나 병자년(1636) 12월 개전부터 시작하여 정축년(1637) 1월 30일 삼전도 수항단(受降壇)에 나가는 과정을 써 본다. 1636년-병자년(丙子年) 12월 2일 청군(淸軍) 12만 심양을 떠남. 옛날 병력을 과장하는 전통이 있어 10만에서..

역사이야기 2023.08.03

단재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 (의열단 선언문)

영화 '암살'에서 나온 의열단의 운동강령과 정신을 천명한 선언문이다. 독립운동가이자 위대한 민족 역사학자였던 단재 신채호 선생의 글이다. 단재 선생의 글은 그 특징이 기백(氣魄)으로 젊은이의 피를 끓게 한다. 그 중 ‘조선혁명선언’은 선생의 호(號) 단재(丹齋)의 단심(丹心), 붉은 피가 글에 뚝뚝 흘러 내리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아래 그 전문을 수록한다. 한번쯤 읽어보고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이해해보자. 읽으면서 선생의 패기에 지릴수 있으니 여분의 속옷을 준비하도록 하자. 朝鮮革命宣言[조선혁명선언] 1 강도 일본이 우리의 국호(國號)를 없이하며, 우리의 정권(政權)을 빼앗으며, 우리의 생존적 필요조건을 다 수탈하였다. 경제의 생명인 산림·천택· 철도·광산·어장……내지 소공업 원료까지 다 빼앗아 일체..

역사이야기 2023.08.01

호치민 일대기(1)

수 없이 베트남의 호치민으로 출장을 다녔건만, 낮에는 볼 일 때문에, 밤에는 문 닫으니 가지 못하던 호치민 기념관을 얼마 전 (2-25일)에야 겨우 들어가 보았으며 이에 호찌민의 일대기를 요약해 본다. 이 인물의 생애를 통해 월남 현대사를 읽다 보니 월남과 우리나라의 같고도 다른 점, 다르고도 같은 점이 있어 그것까지 적다 보니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붙었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참고서적 : 호치민 평전(評傳) (저자: 찰스 펜( Charles Fenn) 번역 김기태, 출판사 자인, 2001년 판) 호치민(胡志明) ! 냉전이 한참인 1960년 대 - 필자 세대가 배운 호찌민은 선량한 남쪽 월남을 호시탐탐(虎視貪貪) 노리며 기회만 있으면 공산화 시키려는 교활한 빨갱이 대장이었다. (60년대 한국에서 월남이라면..

역사이야기 2023.07.31

임진왜란 - 0. 전쟁의 서막 (당시 한중일 3국의 군사력-국력비교)

조선군임진왜란이 발발하기 2년 전 일본의 요청에 따라 조선 정부는 조선통신사를 일본에 파견했다. 이때 통신사가 가져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서신을 통해 조선을 침략할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선조에게 조선과 명나라를 침입할 것임을 서신을 통해 알렸다. 조선통신사가 선조에게 전한 서신 내용은 다음과 같다.비록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오래 산다 해도 예로부터 백 년을 넘지 못하는데 어찌 답답하게 이곳에만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나는 나라가 산과 바다로 막혀 멀리 있음에도 개의치 않고 한번에 뛰어서 곧바로 대명국에 들어가 우리나라의 풍속을 4백여 주에 심어 놓고, 교토의 다스림과 교화를 억만년토록 시행하고자 하는 것이 나의 마음입니다. 귀국이 앞장서서 입조한 것은, 앞일을 깊이 헤아린..

역사이야기 20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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