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행차 5

화성행차를 따라서 (5) 청파로-삼남대로

남대문에서부터 서울역 뒤 청파로, 삼각지로 이어지는 길은 옛 삼남대로 구간으로 ‘도도로키의 삼남대로 답사기’를 (성지문화사, 2002년) 참고했다. 저자 도도로키 히로시(轟博志)는 1971년생 일본인으로 한국에 와 서울대 지리학과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우리 옛길을 연구하여 삼남대로 뿐 아니라, 영남대로 책도 내고 관동대로에 대하여 논문도 발표했다. 2년 전 이 사람이 쓴 ‘영남대로 답사기’ 와 ‘삼남대로 답사기’ 를 처음 읽었을 때 한 마디로 놀랐다. 옛날 그런 길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실재로 따라 걸으며 조사하는 외국인이 있을 줄이야. 더군다나 일본인이… 나 포함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동안 무엇하고 있었나? 우리가 거대담론(巨大談論) 좋아할 때 얼핏 사소하게 보이는 일에 평생을 걸고 ..

카테고리 없음 2023.08.28

화성행차를 따라서 (4) 남대문

지금은 고층건물에 에워 싸여 위엄을 찾기 어렵지만 백년 전만해도 주위에 나직나직한 집들 밖에 없었으니 엄청 크게 느꼈던 모양으로 남대문이 돈짝 만하게 보인다는 말이 다 생길 정도였다. 남대문은 도성(都城)의 상징이요 옛길 중 영남대로와 삼남대로의 시발점이다. 현판에는 숭례문(崇禮門)이;라 쓰여 있으니 3편 글에서 이야기 한대로 오상(五常) 중 남방(南方)에 해당하는 예(禮)를 넣어 지었으니, 옛날 사람들은 이름만 듣고도 남쪽에 있는 문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현판글씨는 설이 구구하나 양녕대군이 썼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있다. 글씨를 세로로 쓴 것은 숭례(崇禮) 두 글자가 위 아래로 있으면 불꽃을 뜻하기 때문에 관악산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해서 라고 한다. 글자를 그렇게 세로로 쓰면 왜 불꽃이 되는 지는..

여행기 2023.08.28

화성행차를 따라서 (3) 종루와 광통교

일요일 아침 10시 10분 이문설농탕을 나왔다. 종루(鐘樓) (종각(鐘閣) 또는 보신각(普信閣) 지금은 광화문 네거리가 서울의 중심, 도로원표가 있으니 대한민국의 기준점이지만, 조선시대 도성의 중심은 종루 였다. 세종실록 지리지 : 鐘樓 在都城中央 종루는 도성 중앙에 있다. 構爲二層 이층으로 되어 있고, 樓上懸鐘 누위에 종을 달아서 以警晨昏 새벽과 저녁을 깨우쳐 준다. 태평로-세종로 길은 대한제국-19세기 말부터 생겼고 조선 왕조 때는 남대문에서 신세계 앞, 명동, 광교를 거쳐 종루로 들어 왔다. 오늘 날 도시계획은 길을 퀭하게 뚫어 이리 저리 사통팔달 연결하는 것이나 옛날에는 그렇게 하면 기(氣)가 흐트러지고, 적이 침입 할 때도 불리하다고 생각했다. 위 세종실록지리지 인용대로 조선 초기에는 2층이었으..

여행기 2023.08.24

화성행차를 따라서 (2) 돈화로

211년 전 윤(潤) 2월 9일 정조대왕은 창덕궁에 사셨으니 6시 45분 이른 새벽에 길 떠났지만, 필자(筆者)야 집에서 오는 시간이 있어 돈화문 앞에 가니 일요일 오전 9시로 날씨는 매우 차나 사진 찍기 딱 좋게 맑게 개었다. 돈화문 (敦化門) 광화문 복원 글에도 월대(越臺) 이야기를 잠깐 했지만 돈화문 앞에도 월대가 있었으니 다음은 동궐도(東闕圖) 중 돈화문(敦化門) 부분이다. 동궐도(東闕圖) 란? 국보제249호, 견본채색, 16폭 병풍, 각 폭 36.0x275.0cm 조선시대(朝鮮時代) 동쪽에 있는 창덕궁(昌德宮)과 창경궁(昌慶宮)을 함께 그렸기에 동궐도 (東闕圖)라고 한다. - 일반 적인 풍경화와는 달리 투시도가 아니라 등각 투상도 형식으로 그려졌다.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예술적인 가치보다는 기록으..

여행기 2023.08.23

화성행차를 따라서 (1) 반차도

이 글은 1795년 정조 대왕이 돌아가신 아버지 사도세자 (1735년생)의 주갑(周甲)과, 아버지와 동갑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回甲)을 맞아 아버지 무덤 현륭원과 화성을 찾는 행차를 따라 걷는 기행문이다. 다녀 왔다 하고 네 글자로 끝낼 수도 있겠지만 이것 저것 사설과 사진을 붙일 테니 꽤 여러 편으로 나뉠 것 같다. 임금이 능(陵)에 가는 것을 능행(陵幸)이라 하는 데 이때 사도세자는 아직 장조(莊祖)로 올리기 전이라 그 묘는 능 이 아니고 원(園)이니 (고종 때 추존(追尊)되어 지금은 융릉이라 부름) 이 글의 주제가 되는 행차는 능행이 아니고 원행(園幸)이고, 을묘년이니 을묘원행 이다. 1795년 을묘년 (乙卯)년 윤(潤) 2월 9일 오전 6시 45분 세 번째 북이 울리니 (삼취 (三吹) 임금의 거둥..

여행기 2023.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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