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4월 13일 쓰시마를 출발한 일본군은 부산과 동래를 함락시킨 후 파죽지세로 북상한다. 부산진-동래 전투는 조선의 예상 밖의 대규모 병력을 상륙시킨 일본군에게 지속적으로 격파당하였다. 거침없이 북상하는 일본군은 4월 28일 충주에서 신립의 병력과 조우한다. 임진왜란 초기 최대의 전투이자 조선군에게 막대한 손실을 안긴 것이 바로 탄금대 전투이다.일단 조선군과 조선 조정은 바보는 아니었고, 엄청나게 무능력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임진왜란 초기의 지속적인 패전은 초기 대전략의 거대한 실패에 기인한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제일 큰 원인은 바로 일본군 병력과 일본의 국력 판단에 커다란 오차가 있었던 탓이다.일단 일본의 전체 동원가능한 병력 총 47만으로 추산되는데, 조선은 이 숫자를 알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