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도의굴욕 3

병자호란 날짜별요약

1636(丙子년) 호란 전 청나라가 보낸 국서(國書) 11.25 까지 왕자와 대신을 보내라 ““네 나라히 동지 달 이십 오일 젼으로 대신(大臣) 왕자(王子)를 보내지 아니하면 내 당당이 동으로 크게 나가리라. 나 드르니 네 나라히 산셩(山城)을 만히 ?거니와 당당이 대노(大路)로 조차(=따라) 갈 거시니 산셩으로 날을 막을소냐 네 나라히 강화(江華) 밋거니와 팔도(八道) 즛바랄?(=짓밟을 적) 조고만 셤으로 님군 노릇을 할소냐. 네 나라히 의논 잡으니 다 션비니 가히 붓살 둘너(=붓을 쌓아서) 날을 막을소냐” (산성일기) 12.02 청군 심양을 떠남 청병이 스스로 20만이라 칭하였으나 실은 자기들 군사가 7만이고, 몽고 군사가 3만이며, 공유덕(孔有德)과 경중명(耿仲明)의 군사가 2만이니, 합하여 12만..

역사이야기 2023.08.09

병자호란(丙子胡亂) (3)

강화도(江華島) 함락(陷落) 강화와 육지를 가르는 염하(鹽河)는 넓이가 개울 정도 지만 역사상 외적(外敵)은 여기를 도저히 건널 수 없었다. 유목민이라 수전에 익숙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몽고가 초원을 떠나 중국을 침공하면서 중국인의 기술을 빌어 바다 같이 넓은 황하와 양자강도 건너는 실력을 갖추었는데 이 좁은 해협이 문제가 되었겠는가? 더욱이 청나라의 여진족의 전신으로 여겨지는 말갈족은 바다를 통해 신라, 우산국(울릉도), 규슈등지를 무수히 약탈한 적이 있다. 해전 능력이 없어서 강화도를 침략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는 뜻. 그럼에도 육지에서 바라만 보았던 것은 물살이 세찬데다가 곳곳에 암초가 널려 있어 보기와는 달리 대단히 위험한 물길이기 때문이다. 위 지도에서 남쪽 손돌목과 북쪽 갑곶진 사이 염하(鹽河..

역사이야기 2023.08.06

병자호란 (丙子胡亂) (1) - 쌍령(雙嶺)전투

필자(筆者)의 방계 조상 분 중 한분-정확하게는 12대 조(祖)의 동생 되는 분이 참가한 전투이다. 1636년 병자호란을 당해 남한산성에 포위 된 인조대왕과 조정(朝廷)을 구출하기 위하여 경상도 근왕군이 수행한 작전으로, 때는 병자년 해를 넘긴 1637년 정축(丁丑)년 1월 3일이다. 전개상 병자호란부터 개관(槪觀)해 본다. 1636년 병자(丙子)년 12월 2일 만주, 몽골,한인(漢人)으로 구성된 청(淸)의 10만 군대가 심양을 떠난다. 12월 9일 청군(淸軍) 압록강을 건너다. 음력으로 12월 6일이면 양력으로 정월 중순. 강은 이미 얼어 있어 도하작전이 따로 필요 없었다. 그 해 청(淸)의 침공은 진작부터 예고되었으니 (*) 홍타이지는 11월 25일 까지 인질을 보내지 않으면 쳐들어 올 것 이라고 협..

역사이야기 2023.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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