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4

임진왜란 1회전 , 탄금대 전투 (1) - 전투 사전 준비

1592년 4월 13일 쓰시마를 출발한 일본군은 부산과 동래를 함락시킨 후 파죽지세로 북상한다. 부산진-동래 전투는 조선의 예상 밖의 대규모 병력을 상륙시킨 일본군에게 지속적으로 격파당하였다. 거침없이 북상하는 일본군은 4월 28일 충주에서 신립의 병력과 조우한다. 임진왜란 초기 최대의 전투이자 조선군에게 막대한 손실을 안긴 것이 바로 탄금대 전투이다.일단 조선군과 조선 조정은 바보는 아니었고, 엄청나게 무능력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임진왜란 초기의 지속적인 패전은 초기 대전략의 거대한 실패에 기인한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제일 큰 원인은 바로 일본군 병력과 일본의 국력 판단에 커다란 오차가 있었던 탓이다.일단 일본의 전체 동원가능한 병력 총 47만으로 추산되는데, 조선은 이 숫자를 알지 못했다. ..

역사이야기 2024.06.23

병자호란 (丙子胡亂) (1) - 쌍령(雙嶺)전투

필자(筆者)의 방계 조상 분 중 한분-정확하게는 12대 조(祖)의 동생 되는 분이 참가한 전투이다. 1636년 병자호란을 당해 남한산성에 포위 된 인조대왕과 조정(朝廷)을 구출하기 위하여 경상도 근왕군이 수행한 작전으로, 때는 병자년 해를 넘긴 1637년 정축(丁丑)년 1월 3일이다. 전개상 병자호란부터 개관(槪觀)해 본다. 1636년 병자(丙子)년 12월 2일 만주, 몽골,한인(漢人)으로 구성된 청(淸)의 10만 군대가 심양을 떠난다. 12월 9일 청군(淸軍) 압록강을 건너다. 음력으로 12월 6일이면 양력으로 정월 중순. 강은 이미 얼어 있어 도하작전이 따로 필요 없었다. 그 해 청(淸)의 침공은 진작부터 예고되었으니 (*) 홍타이지는 11월 25일 까지 인질을 보내지 않으면 쳐들어 올 것 이라고 협..

역사이야기 2023.08.03

병자호란(丙子胡亂) (2)

정축하성(丁丑下城) 병자호란(丙子胡亂)은 물질적 손해는 임진란(壬辰亂)보다 덜 할지 모르나 임금이 삼전도에서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고 절한 사건은 조선 선비들에게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주니 최근 역사학계에서 조선왕조 전기 후기 시대구분을 임진란 대신 병자호란으로 하자는 논의가 있을 정도다. 그 후 병자호란(丙子胡亂)이란 말도 꺼내기를 싫어하여 정축년에 산성을 내려 왔다는 뜻으로 정축하성(丁丑下城) 또는 하성(下城)으로 써 버린다. 먼저 글 ‘쌍령전투’ 와 일부 중복되나 병자년(1636) 12월 개전부터 시작하여 정축년(1637) 1월 30일 삼전도 수항단(受降壇)에 나가는 과정을 써 본다. 1636년-병자년(丙子年) 12월 2일 청군(淸軍) 12만 심양을 떠남. 옛날 병력을 과장하는 전통이 있어 10만에서..

역사이야기 2023.08.03

겸재 정선의 그림 속 압구정(狎鷗亭)

21세기 대한민국, 하고도 서울, 하고도 강남에서 가장 부자들이 모여 살고 온갖 유행이 다 거기서 시작된다는 압구정동은 조선 초기 세조반정-계유정난(癸酉靖難: 1453년)의 기획 책임자였던 한명회(韓明澮 1415-1487)가 만년(晩年)에 지금 동호대교 남단 한강변에 정자를 짓고 압구정이라 붙인 데서 이름이 비롯되었다. 압구정(狎鷗亭) ! 익숙할 압(狎 ; 누를 압(押)이 아님)에 갈매기 구(鷗)니, 뜻으로 풀면 이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강가에서 갈매기와 벗하며 조용히 지내겠다지만, 말이 그렇다는 것뿐이다. 쿠데타를 총 감독하고, 딸 하나는 예종 비(妃), 또 하나는 예종의 조카-성종 비(妃)를 만들었던 상당부원군 한명회는 한가롭게 은퇴할 인물이 결코 아니었다. 사림파(士林派)가 공론(公論)을 주도했던..

여행기 202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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