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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丙子胡亂) (1) - 쌍령(雙嶺)전투

필자(筆者)의 방계 조상 분 중 한분-정확하게는 12대 조(祖)의 동생 되는 분이 참가한 전투이다. 1636년 병자호란을 당해 남한산성에 포위 된 인조대왕과 조정(朝廷)을 구출하기 위하여 경상도 근왕군이 수행한 작전으로, 때는 병자년 해를 넘긴 1637년 정축(丁丑)년 1월 3일이다. 전개상 병자호란부터 개관(槪觀)해 본다. 1636년 병자(丙子)년 12월 2일 만주, 몽골,한인(漢人)으로 구성된 청(淸)의 10만 군대가 심양을 떠난다. 12월 9일 청군(淸軍) 압록강을 건너다. 음력으로 12월 6일이면 양력으로 정월 중순. 강은 이미 얼어 있어 도하작전이 따로 필요 없었다. 그 해 청(淸)의 침공은 진작부터 예고되었으니 (*) 홍타이지는 11월 25일 까지 인질을 보내지 않으면 쳐들어 올 것 이라고 협..

역사이야기 2023.08.03

병자호란(丙子胡亂) (2)

정축하성(丁丑下城) 병자호란(丙子胡亂)은 물질적 손해는 임진란(壬辰亂)보다 덜 할지 모르나 임금이 삼전도에서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고 절한 사건은 조선 선비들에게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주니 최근 역사학계에서 조선왕조 전기 후기 시대구분을 임진란 대신 병자호란으로 하자는 논의가 있을 정도다. 그 후 병자호란(丙子胡亂)이란 말도 꺼내기를 싫어하여 정축년에 산성을 내려 왔다는 뜻으로 정축하성(丁丑下城) 또는 하성(下城)으로 써 버린다. 먼저 글 ‘쌍령전투’ 와 일부 중복되나 병자년(1636) 12월 개전부터 시작하여 정축년(1637) 1월 30일 삼전도 수항단(受降壇)에 나가는 과정을 써 본다. 1636년-병자년(丙子年) 12월 2일 청군(淸軍) 12만 심양을 떠남. 옛날 병력을 과장하는 전통이 있어 10만에서..

역사이야기 2023.08.03

서산 마애불(瑞山 磨崖佛)

전국 어디나 트레킹 코스 개발이 한참이니 서산(瑞山)시도 (서산은 군(郡)인줄 알았는데 요새 웬만하면 다 시(市)다) 아라메 길을 시장(?)에 내 놓으며, 아라’는 물 또는 바다요, ‘메’는 산이니, 물/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길이라는 설명을 곁들인다. ‘메’라지만 서산 일대가 비산비야(非山非野)-나직나직한 야산이고 바다는 코스 끝부분에야 살짝 보이고, 물은 작은 개울 정도니 이름이 길의 특성을 썩 잘 대표한다고 하기는 어렵고, 다만 발음이 그럴 듯 하여 택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라메길 트레킹 가자는 계획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무엇보다 길 따라 즐비한 문화재에 마음이 끌렸다. https://www.seosan.go.kr/tour/contents.do?key=5990 서산 마애불, 보원사 옛터, ..

여행기 2023.08.01

단재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 (의열단 선언문)

영화 '암살'에서 나온 의열단의 운동강령과 정신을 천명한 선언문이다. 독립운동가이자 위대한 민족 역사학자였던 단재 신채호 선생의 글이다. 단재 선생의 글은 그 특징이 기백(氣魄)으로 젊은이의 피를 끓게 한다. 그 중 ‘조선혁명선언’은 선생의 호(號) 단재(丹齋)의 단심(丹心), 붉은 피가 글에 뚝뚝 흘러 내리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아래 그 전문을 수록한다. 한번쯤 읽어보고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이해해보자. 읽으면서 선생의 패기에 지릴수 있으니 여분의 속옷을 준비하도록 하자. 朝鮮革命宣言[조선혁명선언] 1 강도 일본이 우리의 국호(國號)를 없이하며, 우리의 정권(政權)을 빼앗으며, 우리의 생존적 필요조건을 다 수탈하였다. 경제의 생명인 산림·천택· 철도·광산·어장……내지 소공업 원료까지 다 빼앗아 일체..

역사이야기 2023.08.01

호치민 일대기(1)

수 없이 베트남의 호치민으로 출장을 다녔건만, 낮에는 볼 일 때문에, 밤에는 문 닫으니 가지 못하던 호치민 기념관을 얼마 전 (2-25일)에야 겨우 들어가 보았으며 이에 호찌민의 일대기를 요약해 본다. 이 인물의 생애를 통해 월남 현대사를 읽다 보니 월남과 우리나라의 같고도 다른 점, 다르고도 같은 점이 있어 그것까지 적다 보니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붙었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참고서적 : 호치민 평전(評傳) (저자: 찰스 펜( Charles Fenn) 번역 김기태, 출판사 자인, 2001년 판) 호치민(胡志明) ! 냉전이 한참인 1960년 대 - 필자 세대가 배운 호찌민은 선량한 남쪽 월남을 호시탐탐(虎視貪貪) 노리며 기회만 있으면 공산화 시키려는 교활한 빨갱이 대장이었다. (60년대 한국에서 월남이라면..

역사이야기 2023.07.31

순천 조계산 송광사(松廣寺) 벽화로 본 선종(禪宗)

송광사 어느 법당(정확히 어느 법당인지는 기억 못 함) 벽에 그림이 시리즈로 6점 있었다. 그림이 좋다기보다, 선종의 발생과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과정의 포인트를 잘 잡은 듯하여 사진을 찍어 왔는데, 이제 글을 몇 자 붙여 본다.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松光面) 조계산(曹溪山) 서쪽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이며 대길상사(大吉祥寺) 또는 수선사(修禪社)라고도 하는데 해인사, 통도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삼보사찰의 하나인 승보사찰(僧寶寺刹)로서 매우 유서 깊은 절이며 조계종의 발상지로서 현재는 선수행(禪修行)의 도량이자 조계총림(曹溪叢林)이 있는 곳이다 [출처] 순천 조계산 송광사.|작성자 cds9494' 송광사 일주문(一柱門) 현판은 조계산대승선종송광사(曹溪山大乘禪宗松廣寺) 다. 대승(大乘..

여행기 2023.07.29

임진왜란 - 0. 전쟁의 서막 (당시 한중일 3국의 군사력-국력비교)

조선군임진왜란이 발발하기 2년 전 일본의 요청에 따라 조선 정부는 조선통신사를 일본에 파견했다. 이때 통신사가 가져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서신을 통해 조선을 침략할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선조에게 조선과 명나라를 침입할 것임을 서신을 통해 알렸다. 조선통신사가 선조에게 전한 서신 내용은 다음과 같다.비록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오래 산다 해도 예로부터 백 년을 넘지 못하는데 어찌 답답하게 이곳에만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나는 나라가 산과 바다로 막혀 멀리 있음에도 개의치 않고 한번에 뛰어서 곧바로 대명국에 들어가 우리나라의 풍속을 4백여 주에 심어 놓고, 교토의 다스림과 교화를 억만년토록 시행하고자 하는 것이 나의 마음입니다. 귀국이 앞장서서 입조한 것은, 앞일을 깊이 헤아린..

역사이야기 2023.07.29

송광사(松廣寺) - 순천 조계산

전남 (*)순천 조계산(曹溪山) 송광사(松廣寺)를 다녀온 사람은 많다. 돌아와 쓴 글과 사진도 엄청나 인터넷 검색하면 한정 없이 쏟아진다. 전주 부근 완주에 송광사란 절이 또 있다. 내가 더 보탤 것이 없고, 이 큰 절을 개괄(槪括)하기엔 내공(內功)도 딸린다. 그러나 기왕 다녀왔으니, 인상 깊었던 점 몇 가지 간단히 적어본다. 각서(刻書) 절 입구 어느 바위에 새긴 이름들이다. 옛날부터 자기 이름 남기기를 어지간히들 좋아했나 보다. 그래도 꽤 정성을 쏟았으니, 석수(石手)까지 데려와 새겼을 것이다. 괴발개발 쓰면 낙서(落書)고, 이렇게 파면 각서(刻書)고 그런 거다. 이렇게 자기 이름을 남기는 낙서는 심지어 역사적으로 그리고 세계적으로 상당히 보편적이라 심지어 이집트 쿠푸왕의 대피라미드에도 짓던 일꾼들..

여행기 2023.07.27

비전(碑殿) - 비각, 광화문 네거리 교보빌딩 앞

보통 비각(碑閣) 이라고 부르는 비전(碑殿)은 국가상징가로 인 광화문 네거리 교보빌딩 앞에 있어 대부분이 알고 있을 것이나 어쩐지 다들 무심히 지나칠 뿐 정확히 알지는 못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쓴다. 고종황제 기로소(耆老所) 에 들다. 1902 년 고종황제는 기로소(耆老所) 에 들었다. 기(耆)의 원래 글자모양은 다음과 같으니, 그 내원(來源) 은 ‘本義爲60歲的老人’ - ‘60 이 넘은 노인’ 이란 뜻이다. 기로소(耆老所)를 옛 지도 수선전도에 찾으니 육조거리 끝이니 현재 광화문 교보빌딩 근처일 것이다. 기로소(耆老所) 란 ? 조선왕조시대 정이품 이상의 관원으로 나이 70 이 넘으면 기로소 에 들어가는 데, 이때 나라에서는 전토(田土),염전(鹽田), 어전(漁箭),노비등을 내려 주었다. 하는 ..

여행기 2023.07.26

다산초당(茶山草堂) - 다산 정약용의 발자취

이 날 강진 지역 일출예정시간은 아침 6시 43분이었다. 다산초당에서 해돋이를 보려면 6시 정도에 숙소에서 떠나야 했다.그러나 서른 댓 명 일행 중 삐치는 사람도 있고 운전기사 또한 뭘 착각하여 길을 잠깐 헤매는 통에 다산유물전시관 앞에 오니 그만 해가 떠 올라 버렸다. 뒤로 보이는 산이 만덕산으로 차밭이 있다고 별명이 다산(茶山)이다. 정약용 선생 덕분에 이곳이 다산이 된 것이 아니라, 다산이 있어 정 선생이 다산(茶山)이 되었다는 것이 여기 사람들의 자부심이다. 다산초당 가는 길에 해남 윤씨 윤종진의 묘가 있다. 윤종진 묘(墓) 석상. 고졸(古拙)한 웃음이 오히려 현대적 느낌을 준다. 윤 선생은 다산이 귀양살이 할 때 교유했다고 한다. 다산초당(茶山草堂) 답사 전 읽은 다른 기행문에 복원한 집이 너무..

여행기 2023.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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