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41

화성행차를 따라서 (1) 반차도

이 글은 1795년 정조 대왕이 돌아가신 아버지 사도세자 (1735년생)의 주갑(周甲)과, 아버지와 동갑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回甲)을 맞아 아버지 무덤 현륭원과 화성을 찾는 행차를 따라 걷는 기행문이다. 다녀 왔다 하고 네 글자로 끝낼 수도 있겠지만 이것 저것 사설과 사진을 붙일 테니 꽤 여러 편으로 나뉠 것 같다. 임금이 능(陵)에 가는 것을 능행(陵幸)이라 하는 데 이때 사도세자는 아직 장조(莊祖)로 올리기 전이라 그 묘는 능 이 아니고 원(園)이니 (고종 때 추존(追尊)되어 지금은 융릉이라 부름) 이 글의 주제가 되는 행차는 능행이 아니고 원행(園幸)이고, 을묘년이니 을묘원행 이다. 1795년 을묘년 (乙卯)년 윤(潤) 2월 9일 오전 6시 45분 세 번째 북이 울리니 (삼취 (三吹) 임금의 거둥..

여행기 2023.08.21

사자산 법흥사 (獅子山 法興寺)

영월 수주면 사자산(獅子山) 자락 법흥사에는 신자들의 순례가 끊이지 않으니 바로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있음이다. 적멸보궁(寂滅寶宮) 이란 ?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한 대신 불상을 모시지 않는 불전(佛殿). 부처님의 분신과 다름없는 사리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전(殿)이나 각(閣)보다 상위개념 인 궁(宮)이라 하였고, 그도 모자란지 하나 더 올려 보궁(寶宮)이란 이름을 붙였다. 보궁(寶宮)의 기원은 석가모니가 대각(大覺) 후 최초의 적멸도량회를 열었던 마가다국 가야성 남쪽 보리수 아래 금강좌(金剛座)에서 비롯된다. “- 이상 불교용어사전에서. 우리나라에는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 있으니, 영축산 통도사, 오대산 월정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다. 이 정도 사전..

여행기 2023.08.20

8-15를 맞아 _ 일본 천황의 종전(終戰)조서

광복절을 지나 생각나는 것이 일본 천황의 이른바 ‘종전조서(終戰詔書)’다. (항복 선언이 아니다). 우리 때 초등학교 교과서에 일본 천황이 떨리는 소리로 방송.. 어쩌고 하는 글이 실려 있기도 하여, 그런 게 있다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으나, 전문(全文)을 읽어 본 것은 최근이다. 원문 텍스트와 번역문은 글 말미에 붙이겠거니와 문장이 상당히 어렵다. 일본어 토씨나 읽는 수준인 나야 말할 것도 없지만, 잘 하는 사람… 아니 일본인들조차도 보통 대중(大衆)은 이해하기 쉽지 않겠다. 말 자체가 어려운 것만 골라 놓은 것이다. ‘유범(遺範)’ 같은 것은 그렇다 치고, ‘너희들 신민’ 하지 않고 ‘爾臣民’ 해 놓으면 보통 사람이 알아먹겠나?‘拳拳措カサル’ 같은 것은 직역에서 권권복응(拳拳服膺)이라고 해 놓은 ..

역사이야기 2023.08.19

선정릉 - 정릉(靖陵) - 중종

삼성동 선정릉(宣靖陵)에는 필자가 먼저 글 ‘선릉’ 에서 소개한 성종(成宗)과 그 계비(繼妃) 정현왕후(貞顯王后)의 능 뿐 아니라, 제 11대 중종(中宗)의 정릉(靖陵)이 또 있다. 사진 : 구글로 본 선정릉. 입구에 성종의 선릉이 있고 그 안쪽에 중종의 정릉(靖陵)이 건좌손향(乾坐巽向)-북서에서 남동을 바라보고 있다. * 중종은 연산군을 쫒아내고 집권한 조선의 11대왕이다. 연산군의 이복형제였으며 초기에는 중종반정의 공신들에게 휘둘렸으며 이들을 견제하고자 그 유명한 "조광조"를 등용하여 왕권을 강화해보려했지만, 그 조광조도 말을 안듣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훈구파와 조광조로 대표되는 사림파를 적당히 균형있게 견제하다가 여러차례 사화를 일으켜 옥사와 피바람을 일으켰다. 집권기 내내 이런저런 잡음이 컸으니..

여행기 2023.08.16

호치민 일대기(2)-유신회

유신회 (維新會) 20세기 초 월남에 ‘호이주이떤’ 이란 단체가 결성되었는데 한자로는 유신회(維新會)로 쓴다. 주로 왕족 중심의 독립운동단체로 그 투쟁의 원동력을 월남 내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외국원조에서 구했다. 외국이라고 해도 동남아에 진출한 당시 서구 열강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 정도 인 바 이들은 각자 세력범위에 대한 일종의 담합. 즉 상대방 구역은 건드리지 않기로 합의가 되어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현상을 타파하고 싶은 것은 신흥세력이니, 월남 유신회에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해 주는 나라는 후발제국주의자 일본이었다. 일본은 일찍부터 동아시아의 맹주가 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는 나중에 * 팔굉일우 (대아시아주의)로 수렴된다. 팔굉일우 (八紘一宇) ; 온 천하가 한 집안 이..

역사이야기 2023.08.14

선릉(宣陵)

이 글의 도입부-성종대왕이 승하하고 선릉에 국장행렬이 도착하기 까지 과정은 너무 길어 ‘성종의 국장’ 이란 제목으로 별도로 떼어 냈다. 혹시 관심 있으면 다음 링크에 들어가 읽을 것. 2023.08.05 - [여행기] - 선릉 - 성종(成宗)의 국장(國葬) 지하철 선릉역 북쪽 약 200m 에 선정릉(宣靖陵) 또는 삼릉이 있다. 선정릉은 조선 제 9대 성종(成宗)과 계비(繼妃) 정현왕후(貞顯王后) 윤씨 (尹氏)의 선릉(宣陵)과 제 11대 중종(中宗)의 (*) 정릉(靖陵)을 합쳐 부르는 말이고 삼릉(三陵)은 경내에 능상(陵上: 민간의 봉분)이 셋 있어 생긴 표현이다. 보기엔 능상(陵上)이 셋이나 성종(成宗)과 정현왕후(貞顯王后) 능은 하나의 능-선릉(宣陵)이니, 삼릉이란 정확한 이름이 아니나 말이 이미 굳어..

여행기 2023.08.10

병자호란 날짜별요약

1636(丙子년) 호란 전 청나라가 보낸 국서(國書) 11.25 까지 왕자와 대신을 보내라 ““네 나라히 동지 달 이십 오일 젼으로 대신(大臣) 왕자(王子)를 보내지 아니하면 내 당당이 동으로 크게 나가리라. 나 드르니 네 나라히 산셩(山城)을 만히 ?거니와 당당이 대노(大路)로 조차(=따라) 갈 거시니 산셩으로 날을 막을소냐 네 나라히 강화(江華) 밋거니와 팔도(八道) 즛바랄?(=짓밟을 적) 조고만 셤으로 님군 노릇을 할소냐. 네 나라히 의논 잡으니 다 션비니 가히 붓살 둘너(=붓을 쌓아서) 날을 막을소냐” (산성일기) 12.02 청군 심양을 떠남 청병이 스스로 20만이라 칭하였으나 실은 자기들 군사가 7만이고, 몽고 군사가 3만이며, 공유덕(孔有德)과 경중명(耿仲明)의 군사가 2만이니, 합하여 12만..

역사이야기 2023.08.09

봉정사 영산암(靈山庵)의 흥미로운 벽화(壁畵)들 (경북 안동,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천등산 기슭에 있는 봉정사(鳳停寺)는 682년(신문왕 2) 의상(義湘)이 창건한 절로 알려져 왔으나, 1972년 극락전에서 상량문이 발견됨으로써 672년(문무왕 12) 능인(能仁) 대사가 창건했음이 밝혀졌다. 천등굴에서 수학하던 능인 대사가 도력으로 종이로 봉(鳳)을 만들어 날렸는데, 이 봉이 앉은 곳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창건 후 능인은 이 절에다 화엄강당(華嚴講堂)을 짓고 제자들에게 전법(傳法)하였다 한다. 능인대사가 의상대사의 제자이니 창건설화가 구전되어 오다가, 능인대사에서 의상대사로 와전되었을 수도 있겠다. 봉정사의 영산암은 지조암과 함께 봉정사의 부속암자로 응진전, 영화실, 송암당, 삼성각, 우화루·관심당 등 5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건물의 구체적인 건립연대는 알 수 없..

여행기 2023.08.09

병자호란(丙子胡亂) (3)

강화도(江華島) 함락(陷落) 강화와 육지를 가르는 염하(鹽河)는 넓이가 개울 정도 지만 역사상 외적(外敵)은 여기를 도저히 건널 수 없었다. 유목민이라 수전에 익숙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몽고가 초원을 떠나 중국을 침공하면서 중국인의 기술을 빌어 바다 같이 넓은 황하와 양자강도 건너는 실력을 갖추었는데 이 좁은 해협이 문제가 되었겠는가? 더욱이 청나라의 여진족의 전신으로 여겨지는 말갈족은 바다를 통해 신라, 우산국(울릉도), 규슈등지를 무수히 약탈한 적이 있다. 해전 능력이 없어서 강화도를 침략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는 뜻. 그럼에도 육지에서 바라만 보았던 것은 물살이 세찬데다가 곳곳에 암초가 널려 있어 보기와는 달리 대단히 위험한 물길이기 때문이다. 위 지도에서 남쪽 손돌목과 북쪽 갑곶진 사이 염하(鹽河..

역사이야기 2023.08.06

선릉 - 성종(成宗)의 국장(國葬)

성종(成宗)의 훙(薨) 실록 성종 25년( 1494) 12월 24일 오시에 임금이 대조전(大造殿)에서 훙(薨)하였는데 (上薨于大造殿) 춘추(春秋)는 38세이다. (오시(午時)-상오 11시부터 오후 1시. 대조전은 창덕궁에 있는 전각) 천자의 죽음은 붕(崩), 제후의 죽음은 훙(薨), 그 이하는 졸(卒) 이니, 중화적 천하질서에 마음으로 편입한 조선에서 임금의 죽음은 훙(薨)이었다. 식민사관에서는 바로 사대주의 운운할 텐데 듣기에 거북하지만 우리 역사에 그런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 있다. 성복(成服)과 연산군 즉위 실록 연산 즉위년 12월 29일 미시(未時)에 성복(成服)하였는데, 왕세자는 최질(衰질)을 입고 왕자(王子) 및 종친(宗親) 문무 백관(文武百官)은 모두 최복(衰服)을 입고 들어와…. (상복의 경..

여행기 2023.08.05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