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다산초당(茶山草堂) - 다산 정약용의 발자취

멍탐정고난 2023. 7. 24.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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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강진 지역 일출예정시간은 아침 6시 43분이었다. 다산초당에서 해돋이를 보려면 6시 정도에 숙소에서 떠나야 했다.그러나 서른 댓 명 일행 중 삐치는 사람도 있고 운전기사 또한 뭘 착각하여 길을 잠깐 헤매는 통에 다산유물전시관 앞에 오니 그만 해가 떠 올라 버렸다.

다산 유물 전시관 앞

뒤로 보이는 산이 만덕산으로 차밭이 있다고 별명이 다산(茶山)이다. 정약용 선생 덕분에 이곳이 다산이 된 것이 아니라, 다산이 있어 정 선생이 다산(茶山)이 되었다는 것이 여기 사람들의 자부심이다. 다산초당 가는 길에 해남 윤씨 윤종진의 묘가 있다.

윤종진 묘(墓) 석상. 고졸(古拙)한 웃음이 오히려 현대적 느낌을 준다. 윤 선생은 다산이 귀양살이 할 때 교유했다고 한다.

다산초당(茶山草堂)

답사 전 읽은 다른 기행문에 복원한 집이 너무나 번듯하게 꾸며져 귀양살이에 고생한 흔적을 전혀 느낄 수 없다더니 과연 그러하다.

이름은 초당(草堂)이로되 실은 기와 얹은 와당(瓦堂)이다. 복원이 아니라 다산 유적지에 그냥 집 하나 번듯하게 지은 것이다. 또한 초당 (또는 와당) 앞은 골짜기에 막힌 것이 답답하여 다산과 추사의 글씨나 감상하고 지나쳤다.

다산동암(茶山東庵) 

다산동암

다산의 글씨 중에서 집자(集字)한 것이라고 한다.

보정산방(寶丁山房)

보배로운 정선생의 산방이라는 뜻으로 추사의 글씨다. 추사는 다산 보다 24세 연하다. 유홍준은 다산 글씨에서 “술에 곯아 떨어진 다음날 아침 북어 국 백반” 이생각 난다면 추사 글씨는 “탕수육이나 란자완스를 연상케 하는 맛과 멋이다”라고 하였다. 유씨를 두고 우리시대 3대 구라꾼으로 치는 사람도 있고 그게 무슨 구라 축에 끼느냐? 라조 (라디오)에 불과하지 !  하는 소리도 있다. (이른 바 3대 구라는 꼽는 사람에 따라 다른데, 백기완 선생과 황석영 씨는 반드시 들어가는 것 같다.)
필자도 란자완스를 좋아하지만 추사의 글씨와 연결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구라가 되었건 라조가 되었건 재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고 별로 밉지가 않다.

초당 근처 바위에 새겨진 정석(丁石)

다산이 귀양이 풀려 고향으로 돌아가기 바로 전에 쓴 친필이라는데 과연 북어 국 냄새가 나는지?

천일각(天一閣)

다산 초당에서 백여 미터 떨어져 천일각 정자가 있으니 다산이 강진만 바다를 내려다 보던 곳이다.정자 자체는 다산 귀양 당시가 아니라 그 후에 지었다.

천일각에서 강진만

해는 떴지만 주위는 아직 어두운 데 햇살은 바다부터 부옇게 밝히고 있다.

능내리 다산 유적

다산의 고향으로 귀양 살이 끝 난 후 살던 곳은 은 서울에서 양수리 가다가 못 미처 남양주 조안면 능내리다. 다산 유적 정리도 비교적 잘 되어 있고 그 아니라도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끼고 한 시간 정도 드라이브를 즐긴 뒤 근처에 지천으로 있는 매운탕 집에서 식구들과 한 끼니 하기도 좋다.

능내리 일대 한강

맨홀 뚜껑에도 목민심서 구절이 들어 있을 정도로 꽤 신경 썼다. 그런데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너무 지나쳐서 이상하게 된 면도 있다. 사실 남양주시 마스코트 자체가 정약용 선생이며, 신도시는 심지어 다산신도시다! 가히 정약용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것 같이 각종 시설물에도 다산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적지 뒤 다산과 부인 풍산 홍씨의 합장 산소에서는 발 아래로 다산이 살던 집과 그 너머 한강이 흐르는 것이 보인다.

다산 산소 -  후면에서
산소에서 내려다 본 다산이 살던 집

여유당(與猶堂)

능내리 다산유적지 생가 사랑에는 여유당(與猶堂) 현판이 걸려 있다.

선생의 호는 다산(茶山)이지만 여유당(與猶堂)이라는 당호도 썼다. 그 여유당 당호(堂號)에 대한 선생 스스로 설명은 다음과 같다.
…..나는 나의 약점을 스스로 알고 있다.
용기는 있으나 일을 처리하는 지모가 없고
착한 일을 좋아는 하나 선택하여 할 줄을 모르고
정에 끌려서는 의심도 아니하고 두려움도 없이 곧장 행동해 버리기도 한다.
일을 그만 두어야 할 것도 참으로 마음에 내키기만 하면 그만 두지를 못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마음속에 담겨 있어 개운치 않으면 기필코 그만 두지를 못한다…..

……이러했기 때문에 무한히 착한 일만 좋아하다가
남의 욕만 혼자서 실컷 얻어 먹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 또한 운명일까.
성격 탓 이겠으니 내 감히 또 운명이라고 말하랴

노자(老子)의 말에
"여(與)여 ! 겨울의 냇물을 건너는 듯하고,
유(猶)여 ! 사방이 두려워 하는 듯 하거라"
라는 말을 내가 보았다

안타깝도다.
이 두 마디의 말이 내 성격의 약점을 치료해 줄 치료제가 아니겠는가?

무릇 겨울에 내를 건너는 사람은 차가움이 파고 들어와 뼈를 깎는 듯
할 터이니 몹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며
온 사방이 두려운 사람은 자기를 감시하는 눈길이 몸에 닿을 것이니
참으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다..,. 하략..

서두는 자기 약점 고백같이 나오고 있지만 요점은 이 험한 세상 그저 조심하는 게 좋다 라는 뜻이 아닌가 한다. 필자 군대생활 할 때 배운 말로 번역하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를 먹물을 좀 풀어 우아하게 표현한 것이다. 당대 아니 우리나라 전 역사를 털어서 가장 위대했던 학자 중 한 분이 말년에 이런 처세훈을 깨달아야만 했던 그 현실이 안타깝다.

여유당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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