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북촌(北村)

멍탐정고난 2023. 7. 20.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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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에서 하는 외국인을 위한 북촌 투어를 다녀왔다. 안내 및 해설을 맡은 조인숙 다리건축 대표는 고건축을 전공한 분이고 그 외로 뒷바라지하러 몇 명이 더 뒤따랐건만 공짜다. 외국에서 City Tour 따라 간 적이 여러 번 있지만 돈 다 냈지 무료로 이렇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시는 처음 본다. 우리나라 구석구석 잘 찾아보면 짜배기가 의외로 많다. 참 좋은 나라다. 단 외국인을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내국인은 대기자 명단에 올려 놓는다. 기다리다 못해 바로 전날 확인 했더니 그냥 오시란다. 말이 웨이팅 이지 오는 사람 막지는 않는 모양이다. 이날 북촌 관광은 삼청동 금융연수원에서 모여 시작했다.

번사창(飜沙廠)

삼청동 일대는 필자가 어릴 때 무시로 놀러 가던 친구 집이 있어 구석구석 잘 아는 편이다. 그럼에도 ‘번사창’ 이란 고적이 있다니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연수원 뒤로 돌아가니 중국풍 건물이 나오지 않는가?

번사창(飜沙廠)
서울유형문화재 제51호, 고종 21년 (1884), 서울 종로구 삼청동 28-1
조선 말 고종 때 탄약을 제조하고 무기를 보관하던 번사창(飜沙廠) 건물이다. 1884년 6월 9일 신식무기 제작을 담당하던 기기국(機器局) 소속으로 열철창(熱鐵廠), 목양창(木樣廠), 동모창(銅冒廠)과 함께 지어졌는데, 번사(飜沙)란 흙으로 만든 거푸 집에 쇳물을 부어 주조(鑄造)하는 것을 말한다. -번사창 앞 해설판에서

건물을 세운 해가 1884년이라…구한말을 가만히 생각하니…
1876년 병자년에 강화도 수호조약을 맺어 개항
1881년 신식군대 별기군(別技軍)을 창설
1882년 임오년 6월 별기군에 대한 반동으로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1884년 갑신년 12월에 갑신정변이 일어났다.

1884년 6월이면 임오군란 후, 갑신정변 전이다. 임오군란으로 주춤했지만 신식군대 양성은 필요하다고 느꼈을 것이고 군대만 만들어서 될 일이 아니니 신식무기 제조 및 수리창이 필요했으리라.

번사창 전경

첫 인상은 중국 건물인데 서양식도 가미되어 있다고 한다. 내부 지붕 트러스 구조는 독일 식이라고 한다.

내부 트러스

금융연수원을 나와 남쪽으로 몇 십 미터 내려온 후 골목으로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북촌이 시작된다.

북촌(北村)

북촌이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마을로 조선왕조 시대 달걀 노른자 벼슬만 골라하던 노론(老論) 양반들이 살던 곳이다. 도성 중심을 흐르는 개천(開川-청계천) 개울 옆은 중인(中人)들이 살고, 그 남쪽 남산 밑은 남인과 소론 곧 권력에서 소외 된 축이 살았다면 북촌은 서슬 시퍼런 집권당-노론의 거주지였다.

수선전도로 본 북촌

위 사진은 수선전도(김정호가 만들었다고 추정) 중 북촌 부분이다. 오른 쪽으로 경복궁, 왼쪽으로 창덕궁, 북쪽으로 북악산과 응봉이 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물 줄기들이 여럿 있다.

경복궁 왼쪽 삼청동 물줄기가 가장 굵다. (청계천 발원은 삼청동이 아니라 창의문 아래 샘으로 보고 있다. 이 삼청동 물은 중학천 (미 대사관 뒤쪽) 로 이어져 모전교에서 청계천으로 들어간다. 필자 어릴 때는 삼청동 개울과 중학천을 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복개되어 버렸다. 안동, 안국방이라고 쓴 곳에서 또 물줄기가 나오니 이 물은 인사동을 가로 지른다. 지금 인사동 안국동 쪽 입구에 그 표석이 있다. 또 가회방, 원동 쪽에도 물줄기들이 있다. 북촌은 위로 산, 좌우로 언덕 그 사이로 개울을 끼고 있는 마을이었다.

이제 동네를 살펴 본다. 경복궁 옆 사간원(司諫院)에서 지금 사간동(司諫洞) 동 이름이 나왔고 그 위에 소격서(昭格署)가 있었으니 삼청동(三淸洞)의 어원이 된다. 소격서는 도교를 위한 시설로 삼청동의 삼청이란 도교의 상청(上淸), 태청(太淸), 옥청(玉淸)을 말한다.

다시 사간원 아래 쪽에 십자교(十字橋)라고 있으니 현재 동십자각 어름이다. 십자교 오른 쪽에 송현(松峴)이란 한국일보 부근 송현동이다. 송현에서 2시 방향 안국방(安國坊)은 안국동이요, 안국방 정동 쪽에 있는 회동(灰洞)이란 지금 재동이다. 회동 위 가회방(嘉會坊)은 그대로 가회동이고 회동 오른 쪽 제생방(濟生坊)은 발음이 게생방으로 바뀌다가 계동이 되었다. 다시 제생방에서 1시 방향 창덕궁 경추문 글씨 옆에 원동(苑洞)이라고 쓰여 있으니 현재 원서동이다.

위에서 말한 동네들이 바로 북촌인 것이다.

위 파란 선 안이 북촌이다. 행정동으로 크게 둘로 나눠 삼청동과 가회동이다. 다시 이 2개의 행정동 안에 10개의 법정동이 있다. 곧 행정동 삼청동 안에 삼청동, 화동, 소격동, 안국동, 송현동, 사간동 등 6개 법정동이 있고, 행정동 가회동 안에는 가회동, 원서동, 계동, 재동 등 4개의 법정동이 있다.

북촌의 한옥

옛날 동네마다 흔히 보던 한옥이건만 이젠 이 동네 와야 겨우 볼 수 있다.

가회동 북쪽 한 자락을 한화에서 빌라단지로 개발했다. 입주자는 주로 외국인 인 듯 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식한 짓이나 잘 한다고 생각하던 세월도 있었을 것이다.

지붕

 

북촌의 지붕들

한옥이 대부분인 가운데 양옥들이 있다. 서슬 시퍼런 노론 양반 동네 치고는 집 규모들이 아주 작다. 그건 1930 년대 큰 필지를 잘게 분할하여 소위 집장수 집들을 지은 탓이다.

고양이
지붕 위 따뜻한 햇살 아래 어린 고양이 한 마리가 배를 깔고 퍼져 있다. 외국인과 아주머니들이 대부분인 일행이 비명을 지르며 좋아 하는데 우리가 고양이 구경하는지, 고양이가 우리 구경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골목 끝에 남산이 보인다.

골목 사이로 본 인왕산이다.

중앙고

필자와 인연이 있는 학굔데 (중학교를 여기 나옴), 학교 다닐 때는 이렇게 일부러 몰려 와 구경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인촌 김성수 선생이 유럽 방문 시 돌집들을 돌아 보고 학교란 마땅히 이렇게 돌로 지어야 되 하고 지은 건물이다.
당시로서는 대단한 건물로 건축가 박동진 씨 작품이다. 학교 안에 들어가 창덕궁 후원-선원전 일대를 둘러싼 숲을 보는데 경비가 와서 왜 함부로 들어 오느냐고 마구 야단친다. 주최 측에서 미처 공문을 띄우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기왕 들어와 잠깐 돌아 보는 것에 그렇게 큰 소리 지르고 개 후리듯이 해야 하는지? 더구나 외국인들 앞에서.하여간 완장 채워 놓으면 누구나 권력을 행사하고 싶은 모양이다.

건물이나 아파트 경비 순하게 보이지만 철가방 한테는 엄청 무섭게 군다. 학교 뒤 산을 남북교류 사무국인가 하여튼 통일부에 징발 당했는데 (실은 중앙정보부 끗발에 밀려 뺏겼다는 소문) 필자 중학교 다닐 때는 학교 산으로 매일 놀던 곳이다..
운동장은 인조잔디를 깔아 아주 고급스럽게 되었다. 그러나 건물을 여기 저기 많이 지어 놓아 옛날보다 비좁은 기분이 든다. 학교에 삼일운동을 모의하던 곳이다, 육십만세사건 진원지다 하는 유적들이 있어 조회시간 마다 그것을 상기시키곤 하던 기억이 난다.

원서동 백홍범 가 옆 ‘한샘 DBEW ‘라고 쓴 곳인데 한옥 지붕을 현대식으로 해석하여 지은 모양인데 어째 일본식이라는 기분이 든다.

장독대

한상수 자수 박물관의 장독대

창덕궁 인정전

원서동 언덕에서 찍은 창덕궁 인정전이다. 막상 창덕궁 안에 들어가면 저런 각도가 잘 나오지 않는다.

북촌문화센터

답사는 계동 북촌문화센터에서 끝났다. 이 집은 한말 외척(外戚) 민씨네 중 민형기의 집이었다. 대단한 재력에 세도가 집이었건만 지방 기준으로 보면 집이 나지막하다. 아마 대궐의 위세에 눌려 높게 지을 수가 없었으리라.

동네를 돌아보니 서울시와 문화단체에서 많은 노력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개방된 집이 여럿 있었으면 좋겠다. 몇 군데 사설 박물관 또는 공방 같은 데만 들어갈 수 있는 데 입구에 입장료 천원 또는 이 천원이라고 써 놓았다. 우리 일행은 내지 않았지만 미리 어레인지가 되어 그런지 평소에도 써 놓기만 하고 받지는 않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돈을 내도 좋으니 들어 갈 수 있는 집이 여럿이면 좋겠다. 하긴 거기 사는 사람은 자꾸 기웃거리면 기분 나쁘리라.

- 이 북촌 답사기는 2008년에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지인분이 진행하는 외국인 대상 북촌투어에 참가하시고 작성하시는 것이다. 사진을 보면 사람들 옷차림이나 풍경이 2008년 스러운 것을 볼 수 있다. 일요일에 다녀오셨다는데, 나도 같이 갔으면 좋은 추억이 되었을 것 같다. 같이 가자고 하셨는데 내가 귀찮거나 다른 일이 있어 안갔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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