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2

병자호란(丙子胡亂) (3)

강화도(江華島) 함락(陷落) 강화와 육지를 가르는 염하(鹽河)는 넓이가 개울 정도 지만 역사상 외적(外敵)은 여기를 도저히 건널 수 없었다. 유목민이라 수전에 익숙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몽고가 초원을 떠나 중국을 침공하면서 중국인의 기술을 빌어 바다 같이 넓은 황하와 양자강도 건너는 실력을 갖추었는데 이 좁은 해협이 문제가 되었겠는가? 더욱이 청나라의 여진족의 전신으로 여겨지는 말갈족은 바다를 통해 신라, 우산국(울릉도), 규슈등지를 무수히 약탈한 적이 있다. 해전 능력이 없어서 강화도를 침략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는 뜻. 그럼에도 육지에서 바라만 보았던 것은 물살이 세찬데다가 곳곳에 암초가 널려 있어 보기와는 달리 대단히 위험한 물길이기 때문이다. 위 지도에서 남쪽 손돌목과 북쪽 갑곶진 사이 염하(鹽河..

역사이야기 2023.08.06

병자호란(丙子胡亂) (2)

정축하성(丁丑下城) 병자호란(丙子胡亂)은 물질적 손해는 임진란(壬辰亂)보다 덜 할지 모르나 임금이 삼전도에서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고 절한 사건은 조선 선비들에게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주니 최근 역사학계에서 조선왕조 전기 후기 시대구분을 임진란 대신 병자호란으로 하자는 논의가 있을 정도다. 그 후 병자호란(丙子胡亂)이란 말도 꺼내기를 싫어하여 정축년에 산성을 내려 왔다는 뜻으로 정축하성(丁丑下城) 또는 하성(下城)으로 써 버린다. 먼저 글 ‘쌍령전투’ 와 일부 중복되나 병자년(1636) 12월 개전부터 시작하여 정축년(1637) 1월 30일 삼전도 수항단(受降壇)에 나가는 과정을 써 본다. 1636년-병자년(丙子年) 12월 2일 청군(淸軍) 12만 심양을 떠남. 옛날 병력을 과장하는 전통이 있어 10만에서..

역사이야기 2023.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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