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2

병자호란(丙子胡亂) (3)

강화도(江華島) 함락(陷落) 강화와 육지를 가르는 염하(鹽河)는 넓이가 개울 정도 지만 역사상 외적(外敵)은 여기를 도저히 건널 수 없었다. 유목민이라 수전에 익숙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몽고가 초원을 떠나 중국을 침공하면서 중국인의 기술을 빌어 바다 같이 넓은 황하와 양자강도 건너는 실력을 갖추었는데 이 좁은 해협이 문제가 되었겠는가? 더욱이 청나라의 여진족의 전신으로 여겨지는 말갈족은 바다를 통해 신라, 우산국(울릉도), 규슈등지를 무수히 약탈한 적이 있다. 해전 능력이 없어서 강화도를 침략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는 뜻. 그럼에도 육지에서 바라만 보았던 것은 물살이 세찬데다가 곳곳에 암초가 널려 있어 보기와는 달리 대단히 위험한 물길이기 때문이다. 위 지도에서 남쪽 손돌목과 북쪽 갑곶진 사이 염하(鹽河..

역사이야기 2023.08.06

한국인의 성질머리

선조의 인산(因山) 광해 즉위년( 1608 무신 ) 6월 11일 실록 대행 대왕의 재궁(梓宮)이 발인하였다. 2월 승하하여 6월 발인(發靷)하니 다섯 달 만에 장사지내라는 법도대로다. 6월 11일 발인하고 다음 날 6월 12일 하현궁(下玄宮-민간의 하관)하였다. 그런데 이 부분 실록기사에 흥미 있는 구절이 하나 붙어 있다. 광해 즉위년( 1608 무신 ) 6월 11일 양사가 아뢰기를, “ 전략(前略) …. 오늘 노제(路祭)를 지낸 곳에서 제사음식을 철거할 때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각사(各司)의 하인과 군인 등이 영악에 난입하여 제사 음식을 차지하려고 하는 바람에 하나의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를 물어 보니, 내관(內官)이 제사 음식을 나누어 군인들에게 주자 각 사의 하인들이 그릇을 밀어서 ..

역사이야기 2023.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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